내가 막연히 동경하던 홍콩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홍콩 영화를 보며 자랐다면 누구나 홍콩에 대한 판타지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샌드위치 가게에서는 왕비가 집게를 흔들며 캘리포니아 드림을 흥얼거리고 옥상 위에서는 양조위와 유덕화가 서로 총구를 겨누며 좁은 골목길에서는 치파오를 입은 장만옥이 스쳐 지나가는 곳. 현란한 밤의 네온사인과 숨이 막힐 것 같은 습한 공기가 뒤섞여 알 수 없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

나 역시 막연하게 홍콩을 동경했다. 일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꼭 홍콩에 가보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얼마간의 돈을 운전 면허를 따는 데 쓸지, 홍콩 여행을 가는 데 쓸지 고민하다가 결국 홍콩행을 택했다. 그때 그 의사 결정 때문에 나는 아직도 운전 면허 없이 자율 주행차의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으로 방문한 홍콩은 그저 좋았다. 빽빽한 건물도 화려한 야경도, 딤섬도 애프터눈 티도, 당시 막 새로 생긴 디즈니 랜드도 모두 다 좋았다. 엄청난 경사길을 쑥쑥 오르는 피크 트램을 타고 산을 오르며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빌딩들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회사나 학교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려면 산을 이만큼이나 올라야 한다니,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극동 아시아에서 태어나 해외 문물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자랐던 내게는 홍콩의 하이브리드함 역시 매력으로 다가왔다. 영국식 펍에서는 피시앤 칩스를 튀겨주고 '빅토리아 파크' 앞에서 이층버스가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또 현란한 한자어 간판으로 가득한 몽콕의 거리를 보면 이곳이 중국 문화권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아시아와 유럽을 합쳐 반으로 나눈 것 같았다.

홍콩에서 일해보고 싶어

하지만 여행으로 접하는 홍콩은 그저 피상적인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놀러 온 일본과, 공부하러 온 일본이 너무나 달랐던 것을 이미 지독하리만치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야경 속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이 현란한 네온사인은 어떻게 읽고 발음하는 건지, 이 사회는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홍콩에서 직접 살면서 나의 궁금증을 파헤쳐 보고 싶었다.

2006년에 일본의 대기업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내가 언젠가는 일본을 떠나 다른 곳에서도 살아 볼 것이라 예감하고 있었다. 홍콩 역시 너무나 살아보고 싶은 도시 중에 하나였지만, 현실적으로 홍콩에서 직업을 얻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당시 몸담았던 곳은 가전 메이커였고, 나는 가전 제품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엔지니어였기 때문이다. 금융과 서비스의 중심지 홍콩에는 제조업이 존재하지 않았고 나를 위한 일자리 또한 없었다.

가전 회사를 택했던 이유는 내가 추상적인 이론이나 개념을 어려워하고 손에 잡히는 물성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드웨어를 개발하겠다는 신념을 꽤나 오래 유지했었다. 하지만 일본의 제조업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몰락하면서 더 나은 환경과 조건을 위해서는 업계를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IT 업계로 와서 UX 디자이너가 되었고, 스마트폰의 부상에 따라 홍콩에서도 에이전시와 컨설턴시 중심으로 UX 디자이너의 구인이 급속히 늘어났다. 이렇게 전혀 연이 닿지 않을 것 같던 홍콩과 나는, 산업의 발전에 의해서 서로 매칭되는 존재가 되었다.

홍콩 정착 그 첫날밤

이미 여행으로 홍콩을 세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어 홍콩 국제 공항은 더이상 낯설지 않았다. 단지 이번에는 화물칸에 우리집 고양이들이 실려 있다는 점이 달랐다. 놀러 온 것이 아니라 살러 온 것이었다. 나는 돌돌이 가방을 굴리며 공항 철도를 타고 도심으로 나와 앞으로 한 달 동안 임시로 거주하게 될 케네디 타운으로 향했다.

케네디 타운은 홍콩섬의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박한 서민들의 동네였으나 지하철 역이 생긴 이후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어 세련된 카페와 브런치 레스토랑이 늘어선 이국적인 거리가 되었다. 이 지역에는 오래된 건물과 주거용 고층 빌딩이 섞여 있었고, 내가 머물게 된 곳은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낡은 빌딩의 6층이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홍콩답게, 한 층 위로 올라갈수록 월세가 천 홍콩달러(약 16만원)씩 저렴해지는 시스템이었다. 예약 시에 2층이 비어있었지만 월세가 너무 비싸져 6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홍콩은 영국식으로 층수를 세기 때문에 1층은 G층이라 불렀고, 2층 즉 홍콩식으로 1층에는 관리실이 위치해 있어 실질적으로 3층부터가 객실의 시작이었다. 내가 살아야 할 6층은 실질 8층이었다.

돌돌이 가방을 끌어안고 힘들게 8층까지 올라와 잠시 쉬고 있자니 고양이 운반 업자가 도착해 고양이들을 빌딩 앞에 내려놓고 갔다. 또다시 끙끙대며 고양이 두 마리를 집 안으로 들여 놓으니 그제서야 이사가 마무리되었다는 실감이 들면서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