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와 다른 풍경

홍콩에서 맞이하는 첫 달.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였다. 일단 제대로 된 취업 비자를 받아야 했고, 회사에 나가서 새 일과 직장에도 적응해야 했다. 머무는 것이 임시 거처이다 보니 새 집도 찾아야 했고, 이삿짐을 정리하고 새 가구와 집기도 마련해야 했다. 산더미 같은 서류를 들고 정신없이 이민국으로 또 직장으로, 은행과 쇼핑몰로 뛰어다녀야 하는 나날이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나의 직속 상사가 될 론에게 연락을 해 보았더니 출근에 앞서 비자 수속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일단 이민국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론과는 온라인으로 딱 한 번 인터뷰를 했을 뿐이었다. 잡 오퍼만 믿고 일본 생활을 뿌리뽑아 홍콩으로 날아왔는데, 직접 만나보니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되었다. 눈앞을 안개처럼 켜켜히 가린 불확실성 때문에, 뭐든지 불안한 마음부터 들었다.

9월 초의 홍콩 날씨는 안그래도 정신이 없는 나를 더욱 혼미하게 만들었다. 도쿄에서는 지긋지긋한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런데 홍콩에 와 보니 여름 제 2회차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9월인데도 3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기온과 90도를 넘어가는 습도에 숨을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디에서든 실외에서 십 분 이상 걸으면 땀이 뻘뻘 났다.

론과 만나기로 한 날에는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완차이의 이민국 앞에서 론을 기다리며 거리를 바라보니 도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좁은 길목에 우산을 쓰고 다닥다닥 붙어 걸어가는 사람들, 낡은 건물에 대롱대롱 달린 한자 간판들을 보며 내가 이제 진짜 홍콩에 살러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완차이의 이민국 앞. 론을 기다리며 찍은 사진.

완차이의 이민국 앞. 론을 기다리며 찍은 사진.

계획에 없었던 여행

론은 키가 컸다. 에이전시 사원답게 말끔한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한 쪽 귀에는 피어스를 하고 있어 외관이 평범한 인상은 아니었다. 론 역시 외국인으로, 얼마 전에 일 때문에 싱가폴에서 홍콩으로 왔다고 했다. 오늘은 부인의 배우자 비자 신청을 위해서 이민국에 온 것이었는데, 내가 마침 홍콩에 상륙하자 겸사겸사 나의 비자 신청도 도우려 한 것이었다.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이민국 안에서 서류를 접수하고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뭐라도 일처리가 잘못되면 어쩌지?'부터 시작해서 '론은 과연 괜찮은 사람일까?' '새 회사에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홍콩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공공기관에서 서류 처리를 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일본과는 달리, 홍콩 이민국의 일처리는 신속했고 공무원들은 과하게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하게 사무적인 서비스를 보여주었다. 내가 관광 비자로 입국했기 때문에 취업 비자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홍콩을 한 번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 한다며, 가까운 마카오에 다녀올 것을 권해주었다.

이렇게 비자 문제 때문에 갑자기 계획에도 없었던 마카오 여행을 하게 되었다. 살다 보면 수많은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홍콩에서 생활하면서 계획에 없었던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급작스러운 마카오 여행은 이 모든 일의 시작일 뿐이었다.

비자 때문에 다녀온 마카오. 습도가 99%였던 것을 기억한다.

비자 때문에 다녀온 마카오. 습도가 99%였던 것을 기억한다.

언제 말을 해야 할까?